19일부터 26일까지 ‘Trace of Desire’전

은암미술관(관장 채종기)은 19일부터 6월 28일까지 신창운 작가의 ‘Trace of Desire’전을 개최한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먹과 아크릴 그리고 칡넝쿨을 사용해 제작한 것인데, 모두 미 공개된 숯 작업과 회화 작품들이다.

신창운 작가는 예술가로서는 흔치 않게 인류학 석·박사 과정을 밟았고 인도로 유학을 다녀왔다. 그동안 작가는 광주신세계 미술상, 대한민국 청년비엔날레 청년작가상, 광주미술상 등을 수상했다.
 

흔적_Trace, charcoal 30.5×26×4cm 2010. ⓒ신창운


2016년에는 그동안의 역량과 작품성을 크게 인정받아 광주시립미술관 ‘올해의 청년작가’로 선정되어 대규모 초대전을 개최하였다. 신 작가는 16회의 개인전 가졌으며 현재 전남대학교 미술학과에 출강하고 있다.

작가는 그동안 다양한 매체실험을 통해 혹독한 역사의 아픔과 회한을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으로 구현해 왔다. 또한 인간의 심연에서 꿈틀거리는 욕망을 다양한 시각적 아이콘을 차용해 동시대의 삶을 표현해 왔으며, 인도유학 후부터는 불가마사우나에서 장작을 쌓아 불을 지피는 화부로 일하게 된다.

장작불로 달궈진 불가마 속에서 “머리가 벗겨지고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고온을 견디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는 창작을 위해 자신을 통제하고 절제하며 극한으로 몰고 갔다. 하루 종일 집요하게 이어지던 사유의 끝에서 다시 시작하는 고된 노동.
 

흔적_Tracem, acrylic on Korean paper 73.7×71cm 2015. ⓒ신창운


그럼에도 사유의 잔상은 몸에 남아 찰나의 깨달음을 놓치지 않았으며, 24시간 그림만 그리면 좋겠다는 그는 부족한 작업의 시간을 보충하기 위해 노동하는 와중에도 창작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이번에 전시되는 숯 작업 역시 땀을 흘리는 동안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제작한 작품들이다.

신 작가는 최근까지 화려한 색조와 그라데이션 기법을 통해 욕망의 강렬함과 그것의 이중성을 표현한 작품들을 꾸준히 선보였다.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들 역시 같은 시기에 제작된 것이지만, 매체와 기법은 완전히 다르다. ‘욕망의 흔적’ 연작은 화려하게 불타올랐던 욕망의 상념들이 바스라 진 후 남은 공허한 실체에 대한 집요한 사유의 결과물이다.

하루 하루 일기를 쓰듯 그려왔다는 ‘흔적’ 작업은 우리를 현재로부터 과거, 즉 선사시대로까지 이끈다. 시대와 문화에 따라 소비되고 강제되는 몸, 지식의 독점과 조작을 통해 인류의 삶을 처참히 짓뭉개버린 절대 권력, 신성으로 위장한 부패한 종교, 환상과 허위를 주입하는 자본주의와 대중문화 등 그는 시간을 거스르고 시대를 통찰해 인간의 욕망을 추출해 낸다.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시공을 초월해 당대의 상황을 대면하는듯한 경험을 하게 되고, 어느 순간 사념이 사라진 청정한 곳에 우리가 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이러한 의식의 유영은 오브제 자체에 내재된 시간의 퇴적 때문이기도 하지만, 신창운 작가 특유의 섬세함에 기인하는 측면이 크다. 그는 타다 남은 숯의 바스라질 것 같은 질감을 고스란히 화면에 옮겨놓기 위해 틈틈이 숯을 구워 다듬고 질감을 연구했다.

‘흔적’ 작업은 고독한 자신에 대한 위안이었으며 자기치유적 의미가 짙다. 메인작업 후 잠시 머리를 식히는 의도에서 진행된 이 작업은 일종의 기도이자 상처받은 자신과의 대화였다. 작업의 휴식을 위한 작업, 신창운 작가는 분명 성실하면서도 치열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흔적_Trace, acrylic on Korean paper 142.7×73.7cm 2017. ⓒ신창운


미술관에서 전시되는 ‘Trace of Desire(욕망의 흔적)’ 연작은 작업실과 노동현장에서 찾고자 했던 실체의 본질에 대한 성찰의 흔적들이다. 그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창작의 에너지를 구하고 작업실로 돌아와 이 에너지를 예술가 특유의 공감각으로 표현한다.

어쩌면 작업에 몰입함으로써 고된 현실에서 자신을 구도했을 것이다. 철저히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그는 관념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수사를 동원하지 않는다. 태생이 농부의 아들이었기에 땅에 대한 애착과 땀의 가치가 자연스럽게 삶의 일부가 되었을 것이다.

노동이라는 육체활동의 끝에서 끌어올린 신창운의 작품은 이러한 연유로 공허하지 않고 깊은 감동과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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