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작명가 집에 악마가 찾아왔다. 개명을 부탁한다.

“이름 바꾼 지 며칠이나 됐다고 또 바꾸나?”
“모두 악마라고 부르는데 영 기분이”

작명가는 이름을 ‘천사’라고 지어 주었다. 악마는 좋다고 갔다.

■이름이야 아무러면

작명가의 집에 가면 벽면에는 유명인의 이름이 빽빽이 붙어 있었다. 자유당 때는 이승만, 이기붕, 최인규, 홍진기 등등 권세를 누리던 인물들이다.

4·19가 터지자 이들의 이름은 좋은 이름의 대열에서 나쁜 이름의 대명사로 벽면을 장식했다. 지금은 어떨까. 혹시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김기춘의 이름이 있을까. 세상 인심이 그런 것이다.
 

국군기무사령부가 지난 1월 25일 국립현충원에서 부대원 6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정한 정치적 중립 준수 다짐 선포식을 개최하고 있다. ⓒ국군 기무사 누리집 갈무리


옛날에 이름은 천하게 지어야 오래 산다고도 했다. 그래서 개똥이, 돌쇠란 이름도 있었고 밥 푸다가 낳았다고 ‘밥푼이’란 이름도 있었다. 뽕잎 따다가 낳으면 뽕순이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순수한 한글 이름이 많다. 정말 아름다운 이름들이 많다. 좋은 현상이다. 듣기 좋고 부르기도 좋다.

왜 지금 이름 타령을 하고 있는가. 하고 싶은 얘기는 그게 아니다. 이름이 나빠서 좋은 일 못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이름도 좋고 행동도 훌륭하면 그야말로 최고다. 돈 많은 사람이 거금을 주며 작명가를 찾는 이유도 나름대로 속으로 바라는 소망이 있어서일 것이다.

개인의 이름은 개인의 영광으로 혹은 치욕으로 남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저주의 이름으로 남는 이름이 있다. 히틀러와 함께 나치의 이름은 인류의 머릿속에 영원히 저주의 이름으로 남아 있다. 외국의 경우를 들 필요가 없다. 우리의 역사 속에도 지워버리고 싶은 이름이 있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금방 떠오르는 이름들이 무수히 있을 것이다.

■이름만 좋으면 뭐 하나

‘은인자중하던 군부가 궐기했다’며 출범한 지 불과 1년밖에 안 된 합법적 민주정부를 엎었던 박정희 쿠데타 정권은 부패에도 빠르게 적응했다.

원래 밥은 굶은 놈이 많이 먹고 고기는 먹어 본 놈이 많이 먹는다고 했다. 이른바 혁명주체세력들은 어떤가. 그들이 굶주린 것은 권력이었다. 권력에 악착같았다.

권력이란 한 번 맛을 들이면 벗어날 수가 없다고 한다. 아편 끊기보다 더 힘들다고 한다. 그들이 권력의 맛을 계속해서 맛보기 위해 해야 할 일은 권력을 계속해서 장악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감시통제 탄압기구다. 중앙정보부가 바로 그것이다.

태어나서는 안 될 중앙정보부의 출생은 이 나라 정치사의 불행이기도 했다. 중앙정보부가 저지른 온갖 비행은 정치사에 기록되어 있다. 이는 박정희의 불행이기도 하지만 이 나라의 불행이기도 하다.

“1967년 선거는 기필코 승리함으로써 5·16혁명의 결실을 역사적으로 입증하여야 할 중대한 의의를 지니고 있으므로 집권세력으로서의 수세(취약점)를 합법적 범위 내에서 장기적이고 치밀한 기획과 준비태세로서 극복한다.”

중앙정보부가 박정희의 장기집권 저의를 노골적으로 들어 낸 고백이다. 그러나 비합법적인 박정희는 꿈을 실현시키지 못하고 궁정동에서 주지육림을 헤매다가 김재규에게 운명을 바쳤다.

중앙정보부는 1981년 개명을 했다. 어느 유명한 작명가가 이름을 지어 줬는지는 모르겠지만 새로 얻은 이름은 ‘국가안전기획부’다. 조금 설명을 하면 ‘국가의 안전을 기획하는 부처’라는 것이다. 얼마나 좋은 의미며 소망인가. 허나 사실은 어땠는가.

그들이 한 것은 영구집권을 위한 기획과 탄압이며 그 과정에서 수 없는 민주인사가 목숨을 잃고 구속됐다. 나라 꼴은 어떻게 되었는가. 집권세력의 절대적 조력자로서 영구집권의 손발이 되었고 이것은 한국정치의 추악한 전통이 되었다. 이제 국정원은 정치와 손을 끊었다고 한다. 

양지에서 음지를 지향한 것이 아니라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하던 중앙정보부는 이제 다시 태어났다. 중앙정보부의 전통을 확실하게 이어가던 원세훈의 오늘을 보면 국정원은 부끄러워진다.

얼마나 머리 좋은 인재들의 집합인가. 진정으로 이제 적폐를 일소하고 다시 태어나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역사에 어떻게 기록되는가도 국정원이 쥐고 있다면 잘못된 표현인가.

■군사안보 지원 사령부

방송을 보던 국민들의 입을 딱 벌어지게 한 이른바 하극상 사건. 계엄령 문건의 주인공이기도 한 기무사(기무사령부)가 개명을 했다. 이름 자주 바꾸는 인간치고 바른 인간 없다는 말이 있다.

꼭 그래서가 아니라 기무사의 개명 역사도 화려하다. 조상을 따지면 70년이라고도 하고 기무사의 나이도 한 진갑이 다 지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무사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면 한숨과 함께 분노가 치민다. 개명의 역사가 그를 증명한다. 기무사 개명의 역사는 그들 자신이 잘 안다. 이번에 바뀐 이름은 ‘군사자원지원사령부’다. 이름 그대로 처신해 주기를 국민들은 간절히 바란다.

사령관이 바뀌고 핵심들은 모두 원대 복귀했다. 안보지원사가 창설되는 과정에서 국방부의 기무사 개혁위원회의 인원 감축 권고에 따라 대대적인 인적청산이 이뤄질 전망이다.

국방부 안보지원사 창설준비단에 따르면, 현재 4천200명인 기무사의 인원은 2천900여 명으로 줄어든다. 이에 따라 1천300여 명의 기존 기무사 요원은 육·해·공군 원 소속부대로 돌아가야 한다.

반드시 사람을 줄인다고 조직이 개선되는 것은 아니나 그 의미는 매우 크다. 반드시 환골탈태해야만 한다. 시중에는 과거에 기무사를 움직였던 핵심요원들은 그대로 존재한다는 소문이 있다. 절대로 그렇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다음 달 1일 기무사는 새로운 옷을 입고 국민 앞에 나타난다. 국민의 축복과 기대 속에 탄생하는 ‘군사자원 지원사령부’의 모습을 기대한다. 국민들이 악마처럼 사갈시(뱀이나 전갈을 보듯이) 하던 기무사가 이제 천사의 모습으로 국민 앞에 모습을 나타내 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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