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문범강 조지타운대 교수

2018광주비엔날레에서 북한의 미술작품이 전시된다는 소식에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비엔날레 기간 동안 ACC에서 전시 예정인 북한 미술은 문범강 조지타운대 교수의 역할이 컸다.

문 교수는 2011년부터 9번의 북한 방문으로 북한의 미술 이른바 조선화에 매료되었고 만수대창작사 작품을 비롯해 22점의 조선화를 전시기획하기에 이르렀다.

더구나 문 교수의 조선화 전시기획이 주는 의미는 분단 이후 최초의 대규모 북한 작품 전시인 점은 물론이고 민간 차원의 대형 문화교류라는 점에서 향후 민간 문화교류의 중요한 시발점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문범강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또, 문 교수가 초청한 김성민 부사장(조선미술가 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과 최창호 만수대 창작사 조선화창작단 실장, 김인석 공훈예술가(조선화창작단 조선화가) 등 3명이 광주비엔날레를 방문할 경우 민간 사상 최초의 남북교류라는 문화사적 정치사적 의미도 크다.

일요일 오후. 문 교수를 만나 ‘조선화’가 무엇인지 한국화의 잃어버린 반쪽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직접 들어보았다. 문 교수가 펴낸 최초의 본격적인 북한미술연구서인 평양미술 조선화 너는 누구냐는 곧 영문판도 발간할 예정이다,

*조선화란 이름이 낯설다. 화가이자 교수라고 들었는데 작업보다 조선화 찾기에 더 매진하고 있다고 했다. 그럴만한 연유가 있는가?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는데 현재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이자 교수가 되었다. 1980년에 도미를 한 목적이 하고 싶었던 그림공부를 위해서였으나 현재는 개인적인 작업을 미뤄둔 채 조선화에 집중하고 있다.

‘조선화’는 한국화를 일컫는 북한말이라고 국어사전에 정의되어 있다. 흔히 북한 그림은 대부분이 선전도구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생활과 그들의 일상에 집중된 그림이 대부분이어서 그들의 삶을 알지 못하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며 쉽게 간과하는 오류 중의 하나이다.

2010년 워싱턴 예도재단에서 처음 ‘조선화’를 보았다. 김일성 전 주석의 빨치산 활동을 형상화한 작품이었는데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적시국가의 금기된 예술작품에 대한 두려움과 동시대에 접할 수 없는 작품의 신선함 등이 복합된 충격이었다.

외곽의 선이 없이 그려진 몰골화 기법의 작품은 입체적으로 보였고 단지 먹 하나로 모든 것이 표현되어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먹을 사용하는 나라 어디에서도 이런 기법의 작품을 본 적이 없어서 충격이 더 심했고 이후의 내 삶은 조선화에 점점 빨려 들어갔고 현재에 이르렀다.

*조선화의 특징은 무엇인가. 우리처럼 문인화도 있는가. 그림을 그린 종이인 고려참지가 궁금하다?

지금껏 어떤 서양화나 동양회화에서 접해보지 못한 독창적 동양화가 바로 조선화이다. 일단 공장에서 찍어내듯 할 것 같은 집체창작품에 어떤 예술성이 깃들어 있을까라는 불신과 편견이 깨졌다는 사실을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조선화의 가장 기본은 형식과의 결별이다. 사회주의 사실주의에 입각해 사상의 예술로 방향을 잡고 있다.

조선화의 출발은 1950년대인데 ‘형식주의는 내용과 형식을 분리시키고 복종시킴으로 예술의 사상성을 떨어트린다’ 는 기치 아래 모든 예술은 형식주의에서 벗어날 것은 강하게 주문했다. 형식을 배제하고 내용을 중심으로 예술이 나아가는 변곡점이 된 셈이다.

조선화는 크게 4가지로 구분된다. 주체화, 산수화, 동물화, 선비화(문인화)다. 북은 동물화 그중에서도 호랑이를 많이 그린다. 김일성 전 주석을 비롯한 김일성 일가를 그리는 작품은 ‘영상작품’이라 별도로 분류 관리된다.

주체화는 내용이 전체인 집체화로 창작되는 경우가 다수이며 한국에서 문인화로 불리는 선비화 역시 일반적 자연풍경의 묘사인 듯 하지만 주체적 사상이 정확히 글로, 혹은 내용 안에 담겨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모든 그림들은 고려참지에 그려지는데, 한국의 한지와 대동소이하다. 닥나무의 질긴 섬유질을 원료로 만들며 참 종이, 진짜 종이란 뜻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집체화는 무엇이며 북한에서 예술가의 위치는 어느 수준이며 한국처럼 예술 영재학교 등이 운영되고 있는가. 예술인의 일상을 알고 싶다?

북에서는 대학을 졸업하거나 미술에 소질 있는 사람은 사회에서 먹고 살 수 있는 시스템이 잘 만들어져 있고 국가나 사회가 예술인들을 '창작가'라며 엘리트 대우를 해준다.

평양에만 만수대 창작사를 비롯해 10개의 창작사가 있고 각 지역, 일하는 공장마다 창작사와 소규모 작업실이 있다. ‘창작사’는 국가에서 운영하며 모든 것을 지원하고 작가들은 국가나 사회가 필요한 작품을 만들면 된다.

형식을 결별한 조선화엔 힘이 있다. 게다가 섬세한 사실주의에 입각해 서슴없고 과감한 붓터치가 함축적인 사상을 담고 있다. 여기까지 표현하기에는 조선화를 그리는 예술가들의 독창적 의식의 발로에서 나온다. 민족적 형식은 조선화였고 사회주의적 내용의 핵심은 주체였다.

평양의 소년학생궁전에서 길러진 예술영재들이 8년 과정의 평양미술대학으로 진학하고 졸업 후 최우수학생은 만수대창작사에 들어간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공무원이 되는 것이다. 만수대창작사에는 천여 명의 예술공무원들이 출퇴근을 하고 이곳을 보조하는 인력이 삼천여 명이 된다.

집체화는 집체작이라 하는데 1인 이상의 작가가 모여 한 작품을 완성해가는 다작가일작품(多作家一作品) 형태를 말한다. 집체화의 목적은 국가적 사안이 걸린 역사적인 기록화를 남기는 것과 역사적 내용을 어떻게 표현하는가하는 미학적 측면이 있다.

예를 들면 거대한 토목공사 현장이나 리더의 서거 등이 내용이 될 수 있고 등장인물들의 움직임을 통해 역동적 구도를 연출하고 격한 감정의 표현으로 군중을 선동하는 목적 아래 섬세한 감정 표정의 포착을 중시하는 것이다.

*2018광주비엔날레 전시에서 무엇을 보여주고 관람자들은 무엇을 보고 갔으면 하는가?

한반도. 한국에서 볼 때 조선화도 한국화도 반쪽의 그림이다. 조선화가 한국화가 될 수도 한국화가 조선화가 될 수도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모두가 우리의 자산이고 민족의 뿌리에 근간하고 있다는 점이다.

22점의 전시될 그림을 보면 느끼겠지만 조선화는 한국인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선동과 구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조선화에는 북한의 조선화만이 생산해 낼 수 있는 독창성과 몰골법의 탁월함, 인민과 노동자의 삶 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동안 동시대 미술을 ‘감상’했다면 조선화는 천천히 책을 읽듯이 ‘읽어가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북한의 체계적인 미술지원 시스템, 예술인에 대한 국가적 사회적 대우, 이에 따른 예술인들의 자긍심이 북한 예술을 체제선전의 도구로 뛰어넘게 만드는 것 아닌가 싶다

북한은 자신들만의 조선화를 구축했고 궁핍 속에서도 자존감을 키웠다. 그동안 가까이하지 못해 낯선 조선화인만큼 편견과 두려움, 당혹한 거부감 등을 버리고 조선화라는 작품 자체로 감상하는 것이 중요하다. 쉽게 볼 수 없는 다양한 기법과 미학적 성취를 꿰뚫어보는 혜안을 기대한다.

2018광주비엔날레 국제심포지움 9월 7일 문범강 교수를 만날 수 있다.

** 윗 글은 <광주아트가이드> 106호(2018년 9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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