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민주영령을 위한 추모와 계승의 등을

30년 전 5월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올해는 5.18민중항쟁 30주년이 되는 해다. 30년 전 부처님오신날 광주는 신군부 일당에게 무참히 학살된 시민의 피로 물들었다. 30년 전 그날은 5월 21일이었다. 올해 부처님오신날과 똑같은 날이다.

1980년 5월 21일, 광주 금남로는 계엄군의 학살에 분노한 시민들의 물결로 넘쳤다. 시민들은 계엄군이 광주를 떠날 것을 요구했고, 연행자 전원석방과 민주주의를 요구했다. 그러나 신군부 일당의 조종을 받은 계엄군은 집단발포로 대답했다. ‘5월의 노래’ 가사처럼 수많은 시민들이 꽃잎처럼 금남로에 붉은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피의 초파일이었다.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날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 만큼이라도 자유를 얻어 다행이다’고 여기는 사람이든, ‘민주주의가 30년 전으로 후퇴해 버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든,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피 흘리고 목숨 바친 5월의 넋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고귀한 보살행이 있었기에 오늘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이 있다. 그들의 용감한 사자후가 있었기에 더욱 키우고 지켜야 할 이 땅의 민주주의가 있다.

그러기에 1987년 5월, 광주 원각사에서는 청년불자들이 5.18민주영령 추모법회를 봉행하였다. 경찰의 법당 난입과 최루탄 난사로 추모법회는 짓밟히고 말았지만, 그러한 만행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광주에서는 6월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전국의 수많은 스님들과 불자들이 민주화운동에 동참하는 계기가 되었다.

5.18민중항쟁은 신군부와 어용언론의 왜곡과 매도, 계엄군의 광주 봉쇄와 무력 진압으로 무참히 짓밟혔지만 6월항쟁을 비롯한 끈질긴 민주화투쟁으로 결국 승리를 거두었다. 1980년 5월 금남로에 떨어져 짓밟혔던 꽃잎들도 환한 웃음으로 되살아나 다시 피는 듯했다.

30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그러나 30년이 지난 오늘, 국민과의 소통을 거부한 채 밀어붙이기로 일관하는 권력에 의해 민주주의와 남북관계는 후퇴하고 서민들의 생존권은 벼랑 끝에 서 있다. ‘4대강 살리기’라는 이름 아래 강과 습지는 처참하게 파헤쳐지고 뭇 생명은 죽음의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언론은 30년 전처럼 다시 권력의 나팔수가 된 채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

5.18민중항쟁 30주년을 맞아 5월 영령들은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 볼까? 조국이 자신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를 바래왔을 민주영령들은 5.18국립묘지에서 편안히 쉴 수 있을까?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권력자들과 모리배들의 참배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지난날 군부독재의 압제에 맞서 수많은 사람들이 민주화를 위해 싸우며 부르짖었다. ‘5월 광주는 끝나지 않았다’고. 민주영령들이 그토록 갈구했던 민주화가 완성되기 전에는 지금도 5월이 끝나지 않았다고 말해야 할까. 사람들의 무관심과 외면 속에 세월은 무상하게 흘러가는데...

문득 지난날 목타게 불렀던 ‘5월의 노래’가 원곡과 겹쳐서 떠오른다. 결연하게 불렀던 노래가 왜 이렇게 슬프디 슬픈 원곡으로 떠오르는지...

프랑스 샹송 가수가 불렀다는 ‘누가 할머니를 죽였나’라는 그 노래는, 재개발 지역에서 오랫동안 자신이 가꾸던 정원이 철거되는 것을 반대하다 희생된 어떤 할머니를 추모하는 노래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재개발지역 철거민을 죽음으로 내몬 용산참사 현장에서도 추모의 노래로 불리었다고 한다.

할머니가 살았던 시절에 정원에는 꽃들이 피어올랐지
세월은 흐르고 기억만 남았네
그리고 네 손엔 더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았지
누가 할머니를 죽였나?
세월인가? 아니면 무심한 사람들인가?

올해 5.18민중항쟁 30주년에 우리는 어떻게 민주영령들을 추모할 것인가? 민주주의를 지키지 못한 부끄러움으로, ‘지못미’의 슬픔으로 추모할 건가? 아니면, 거꾸로 가는 세상에 대한 끓어오르는 분노로 추모할 건가?

추모와 계승의 등 밝히기
5.18민중항쟁 30주년기념행사위원회에서는 ‘들리는가! 5월의 함성, 보이는가! 민중의 횃불’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시민이 참여하는 5.18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5월 중순부터 5월 말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이 시민의 참여 속에 진행될 것이다. 특히 올해 처음으로 시도되는 프로그램으로서 전국민의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추모와 계승의 등 밝히기’일 것이다.

30년 전 5월, 꽃다운 목숨들이 무수히 쓰러져간 금남로에 민주 영령들을 추모하고 그 뜻을 계승하는 하얀 전통 등이 천 개나 걸린다. 그 등에는 5월 영령을 비롯한 민주 영령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등표로 걸리게 되고, 추모와 계승을 다짐하는 시민들의 글발도 등마다 나붙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등은 민주영령들의 넋을 모셔와 이 시대 이 땅의 어둠을 다시 환하게 밝힐 것이다. 광주시민들과 광주를 찾는 많은 이들이 5월 15일 주말과 16일에 가족 친지와 함께 금남로에 나와 추모와 계승의 등을 밝혔으면 한다.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광주의 불교도들은 1980년 당시 학살자들에게 부처님오신날을 완전히 빼앗긴 채 항쟁에 묵묵히 참여하여 시민들과 아픔을 나누었다. 화엄사의 진각스님은 죽어가는 시민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적십자 봉사단에 참여하여 부상자를 구하다가 계엄군의 총격을 받고 반신불수가 되었다. 증심사의 성연스님은 진각스님과 함께 시위에 참여하고 종교인으로는 유일하게 도청 앞 시민궐기대회에서 연설을 했다.

증심사와 관음사 불자들은 부처님오신날 공양 음식과 손수 싼 주먹밥을 시민들과 함께 나누었다. 대학생불교연합회 전남지부장 김동수 열사는 계엄군에게 학살당한 시민들의 시신을 수습하며 도청을 사수하다 장렬히 산화했다. 그 밖에도 많은 청년불자들이 항쟁에 참여하였다.

자비경의 가르침대로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이 누구나 차별없이 평안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금남로에 등불을 밝히자. 민주 영령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그분들이 바라던 진정한 민주화와 평화통일을 하루 빨리 앞당길 것을 서원하는 등불을 환하게 밝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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