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밝힌 가운데 광주·전남지역 각계각층 인사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광주·전남지역 문화예술인과 전문가, 지식인 등 각계 인사 405명은 14일 옛 전남도청 5·18민주광장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아래 성명 전문 및 연명자 명단 참조)
이들은 이날 긴급 시국성명을 통해 “박근혜 정권이 나라와 민족을 배반한 세력의 행위를 은폐하고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노력을 전면 부정하는 역사 반역적 행태를 노골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근혜 정권이 만든 단일 교과서는 국정교과서라기보다 ‘박근혜에 의한 박근혜를 위한 박근혜의 교과서’”라며 “이는 보수와 비보수로 국론을 분열시켜 정권을 연장하려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정부가 제시한 한국사 검인정교과서 ‘좌편향의 근거’는 지난 2011년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가 개최한 한국사 교과서 분석 토론회 자료”라며 “당시 이 위원회는 공안검사 출신으로 최근 막가파식 반공지상주의자로 본색을 드러낸 고영주가 위원장을 맡았다”고 밝혔다.
이어 “‘박근혜 당선으로 적화를 막았다’고 지난 대선을 평가했던 고영주는 올해 국감장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야당대표, 박원순 서울시장까지 공산주의자로 매도했을 뿐 아니라 한국사 연구자 대다수를 좌경으로 규정해 국민을 놀라게 했다”며 “막가파식 반공지상주의자 고영주를 해임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한반도 남녘에 광기어린 전체주의의 망령이 난동을 부리고 있다. 그것은 ‘하나의 역사’란 이름의 획일주의와 시대착오적인 반공지상주의”라며 “모든 양심적 문화예술가·전문가·지식인들은 단결해 박근혜의 전체주의적 교육·학문 정책에 온몸으로 저항하자”고 호소했다.
이날 긴급 성명에는 교육계와 법조계, 문화예술계, 언론계, 시민사회단체 등 각계 인사 405명이 연명에 참여했다.
<광주/전남 문화예술인·전문가·지식인 긴급 시국 성명>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즉각 중단하라!
한반도 남녘에 광기어린 전체주의의 망령이 난동을 부리고 있다. 그것은 ‘하나의 역사’란 이름의 획일주의와 시대착오적인 반공지상주의이다.
1. 박근혜 정권이 나라와 민족을 배반한 세력의 행위를 은폐하고,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노력을 전면 부정하는 역사 반역적 행태를 노골화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수많은 전문연구자, 교육자, 학생, 심지어 정부·여당 관계자들까지 반대했던 국사교과서 국정화를 확정지었다.
원래 정부가 제시한 한국사 검인정교과서 '좌편향의 근거'는 한국사 관련 전문연구자와 교육자들의 공론을 거친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 근거가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가 개최한 한국사 교과서 분석 토론회 자료(2011년)였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당시 이 위원회는 공안검사 출신으로 최근 막가파식 반공지상주의자로 본색을 드러낸 고영주가 위원장을 맡았다. “박근혜 당선으로 적화를 막았다”고 지난 대선을 평가했던 그는 올 해 국감장에서 노무현 전대통령과 문재인 야당대표, 박원순 서울시장까지 공산주의자로 매도했을 뿐 아니라 한국사 연구자 대다수를 좌경으로 규정하여 국민을 놀라게 했다.
2. 아시다시피 국정교과서 체제는 박정희의 유신독재 시기인 1974년 처음 시행되었다. 그때 박정희 정권은 국사학계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검인정체제였던 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밀어붙였다. 지금 박근혜 정권과 완전히 닮은꼴이다. 당시 집필지침에 “유신정신 반영”이 맨처음으로 표시된 것을 통해 국정화 추진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민주화 이후 검인정체제로 바뀐 것은 당연했고 이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그런데 8개 한국사 검정교과서 중의 하나로서 우익세력의 입맛에 맞고 정권이 옹호하는 교학사판 한국사 교과서가 역사교육연구자들 및 일선 학교에서 철저히 외면당하자 박근혜정권은 국정화 카드를 꺼낸 것이다. 세계적으로 국정교과서를 사용하고 있는 국가는 북한·러시아·베트남·필리핀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4개국 가운데 국정제만 시행하는 나라는 그리스와 아이슬란드 2개뿐이다.
3. 박근혜 정권이 만든 단일 교과서는 국정교과서라기보다 ‘박근혜에 의한 박근혜를 위한 박근혜의 교과서’이다. 이는 보수와 비보수로 국론을 분열시켜 정권을 연장하려는 도구에 불과하다.
우리는 경고한다. 결코 정치권력이 한국사 교과서 제정을 좌우해서는 안된다. 헌법재판소의 권고와 UN 총회 결의에서도 표현되었듯이 역사 교육의 내용을 역사 연구∙교육자 및 시민사회의 전문성과 자율성, 다양성을 무시하고 정치권이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전체주의 체제의 가장 중요하고 명백한 특징이다. 히틀러의 나찌, 군국주의 일제, 박정희 유신독재 시대의 역사교육의 공통점이 단일 국정교과서 채택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사교과서 국정화 폭거는 교육과 학문의 발전을 심대하게 위축시킬 뿐 아니라 사상과 언론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을 유린함으로써 세계사적 발전으로부터 이탈하여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는 일이다.
4.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게 묻는다. 이토록 무리하게 국정화를 강행하는 의도는 무엇인가? 친일매국의 과거사를 은폐하고 유신독재를 정당화한 국정교과서를 다까끼 마사오 중위(박정희)와 김용주(일본군 항공기 헌납과 징병을 선동한 김무성의 부)의 무덤 앞에 바치려는 것인가?
국정교과서를 통한 국가정체성의 확립이 전매특허의 지상과제인 양 떠드는 극우 반공지상주의 선동꾼들에게 알린다. 국가정체성은 단일하거나 획일적이거나 고정된 것이 아니다. 사회 발전과 진보에 따라 다양하고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국가정체성이 권력의 강압으로 형성될 때 민주주의를 파괴할 뿐 아니라 인간성을 위협한다.
이 나라의 정체성은 민족반역의 행위를 미화하고, 독재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고 비판을 봉쇄했던 세력에 의해 이미 크게 손상되었다. 국가정체성의 확립을 명분으로 권력의 연장을 도모하고 시대착오적 빨갱이 사냥을 선동하는 저급한 행위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탈하고 주권자인 국민에 도전하는 반역 행위로서 결과적으로 국가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임을 깨닫기 바란다.
나라와 민족의 참다운 정체성은 친일민족반역자 및 군사쿠데타를 통해 부당하게 국가권력을 강도질한 자들 또는 그들과 연고를 맺은 자들이 강압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나라 안에서 민주주의의 철저한 실행을 통해 나라의 대다수 구성원인 대중의 정당한 이익과 입장을 관철시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전체주의적 발상으로 만든 국정화된 교과서가 아니라, 역사 연구자 및 교육자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존중하고 역사적 관점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민주적 기반 위에서만 올곧게 만들어질 것이다. 나라의 정체성을 올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우리는 무엇보다 다양한 한국사 교과서들을 통해 반민족 매국 행위와 민주주의 침탈 행위에 대한 올바른 교육이 필수적임을 천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