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그가 미래 5.18의 역사를 훼손시킬 수 있는가?

5.18 기념재단과 존경하는 세 단체에 대한 나의 응답 내용을 홈페이지에 게재하지 않아서, 나는 광주 5.18 관계자들에게 응답을 보냈다. 한편, 설갑수는 인터넷에 첫 문장부터 마지막 구절까지 노골적인 거짓말, 허위 주장을 진술했다. 설갑수는 어떤 인간인가?  그는 어떻게 5.18재단과 광주를 대변해서 중요한 결정을 하는 권한을 갖게 되었는가?

설갑수의 수많은 거짓말들에 대한 나의 진실규명

1. 설갑수 씨는 자신이 <광주일지>의 번역자로 소개한다. 이는 거짓이다. 그는 공동 번역자일 뿐이다. 그의 영어능력은 번역자로 주장할 만큼 능숙하지 못함을 나는 밝힌다.그가 보낸 26통의 이메일 영어표현에서 확인했다.

2. 설갑수는 그가 돈을 받지 않고 <광주일지>를 번역했다고 주장한다. 아래 기사를 보라. 
http://m.gwangjuin.com/news/articleView.html?idxno=93269  
http://v.media.daum.net/v/20161124173938830  
설갑수는 거짓말을 했다. 설갑수는  겨우 92쪽 영어번역을 하고 4,000만원 혹은 4,800만원을 받았다(정확한 액수를 밝히기 바란다).  이제 적은 돈인가? 설갑수는 “ 아무댓가없이” 번역하겠다고 인터뷰하고, 그렇게 많은 돈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 부끄럽지도 않은가? 재단의 기금은 5.18 희생자들을 위한 것이다.

조지 카치아피카스 교수.

3. 설갑수는 내가 그는 CIA를 위해 일한다고 말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나는 “그가 30년 동안 CIA요원이었던 도널드 그레그와 일한다” 고 말했다. 그는 <광주인>에 그레그와 협력한 세부적 내용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즉, 그레그를 UN 회의에 초청, 김양래와 함께 그래그의 집을 방문, 그레그가 <오마이뉴스>에 글을 싣도록 도움을 주었다.

4. 설갑수는 그레그가 1970년까지 CIA에서 일했다고 했다. 이 또한 거짓말이다. 그레그는 1982년 5.18 민중항쟁 시기까지 CIA요원이었다. 설갑수는 그레그가 1980년 광주 유혈사태와 별로 관계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애썼다.

5. 설갑수는 내가 2002년 시민법정 기획에 참여했다고 말한다. 또한 2002년에 기소된 미국관리들을 내가 선발했다고 주장하면서, 내가 왜 기억하지 못하는지 묻는다. 하지만 진실은 내가 2002년 시민법정 준비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지 나중에 초청을 받아서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인 연설을 했다. 

또한  미국관리들을 선정하는데 나는 참여하지 못했다. 재판은 통역 없이 오로지 한국어로 진행됐다. 5.18기념재단 홈페이지에 재판결과에 관한 영어와 한국어 결정문이 있다. 두 문서에서 보여주는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의 숫자가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6. 설갑수는 2002년 그레그의 유죄판결에 관해 수정과 사과문을 쓰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진실은 6월 17일에 내가 “도널드 그레그에 관한 실수에 대한 사과” 제목으로 한국어와 영어 성명을 썼고, 설갑수, 김양래 외 10여명의 사람들에게 보냈다. 이 사과문은 이미 <광주인>에 게재돼 있다. http://m.gwangjuin.com/news/articleView.html?idxno=95945

7. 설갑수는 <스리랑카 가디언>이 7월 15일까지 그레그에 관한 언급을 수정하지 않았다고 썼다. 이는 또 다른 거짓이다. <스리랑카 가디언>은 6월 26일 이전에 수정했다. 편집자가 직업을 잃고 업무중단으로 내 수정문을 받은 후 게재하는데 며칠 더 걸렸던 것이다. 이 또한 이메일 내용으로 증명할 수 있다.

8. 설갑수는 내가 “가짜 뉴스” 확산방식으로 따른다고 했다. 그는 나를 공격하기 위해 이런 개념을 쓰지만,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사람은 잘못을 즉각 수정하지 않는다. 설갑수는 두 번이나 나의 출판사에게 메일을 썼고, 내가 모르게 수 많은 언론사에게 이메일과 소문으로 나에 관한 거짓소문을 퍼뜨렸다. 

나에게는 43일 동안 26차례 공격적이고 수준 낮은 표현의 이메일을 보냈고, 인종차별적 저급한 표현과 나의 피부색을 4차례나 부정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이메일에서 여러 차례 나에게 복수하겠다고 선언했고, 8번의 메일에서 거짓말쟁이라고 나를 모욕했다. 필요하면, 그의 이메일을 모두 공개할 수 있다.

9. 설갑수는 내가 그의 메일이 5.18기념재단이 도널드 그레그에게 보고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기를 원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결코 5.18기념재단이 도널드 그레그에게 보고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설갑수의 이런 상상력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가?

10. 설갑수는 팀 셔록이 자기가 처음으로 획득한 미국정부의 문서를 내가 사용했다고 나에 대한 불만을 제기했다고 언급한다. 그러나 설갑수는 팀 셔록의 문제제기가 나의 출판사에 의해 결정적으로 거부당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셔록의 문제제기가 근거가 없다는 판단이 내려진 후에, 두 번이나 내 출판사에 메일을 보냈으니 잘 알고 있다는 증거다.

설갑수는 누구인가?

설갑수는 지속적으로 진실(facts) 왜곡할 뿐만 아니라, <광주인>에 의도적으로 자신의 소속을 모호하게 밝혔다. 자신을 “MSCI ESG 분석가”라고 했다. MSCI는 대표적 헤지펀드(소수 투자자들을 비공개모집 후 위험성 높은 금융상품을 만들어 절대 수익을 남기는 펀드) 기업인 모건스탠리 투자회사이다. 이 회사는 글로벌 금융자본의 눈과 귀 역할을 하며, 그들의 슬로건은 “자본이 변화를 창조한다”이다.

설갑수는 존재하지도 않는 “National Underwriter Magazine”의 기자였다고 소개한다. 설갑수의 글은 National Underwriter Company의 자회사인 “Property Casualty 360”에 실렸다. 이 잡지는 보험업계 중개인을 위해 P&C 보험 소식, 트렌드, 의견, 자료, 판매 요령을 제공한다. 설갑수는 이 잡지에 16년 전인 2001년 6월에 마지막 글을 실었다. 설갑수는 현재 자신이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의 컨설턴트이자 미국 Unite Here! 노조의 분석가라고 주장한다. 내가 직접 확인 한 바, 두 군데 모두 설갑수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설갑수에 대한 공식 자료에 의하면, 그는 미국에서 2003년 법적 파산선고를 받고 난 후, 2010년  415,000달러 현금으로 주택을 구입했다( 현재 시세로 하면 4억6,500만원).  파산을 신청한 후 그는 어떻게 돈을 숨겼을까? 매우 궁금하다.

이제 정치적 관점에서 보자. 2017년 5월 27일 <한겨레>에 기사가 실릴 때까지, UN에서 5.18 관련 토론회가 열릴 것임을 아는 광주 시민은 거의 없었다. 특히 도널드 그레그(전두환에게 광주봉기를 진압하라고 명령을 내린 1980년 5월 22일 백악관 모임의 핵심 참석자)가 초청연사로 참석하는 사실에 대해서 더욱 몰랐다. 

그런데 설갑수는 <광주인>에 그가 여러 달 동안 이 회의를 위해 일했고 도널드 그레그의 집을 방문한 다음 그를 초청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어떻게 이렇게 중요한 행사를 5.18 재단 관련 단체와 시민들이 모른 채 설갑수가 진행할 수 있단 말인가? 

도널드 그레그는 누구인가?

도널드 그레그는 광주, 니카라과, 베트남에서 수 많은 사람들의 죽음과 관련된 CIA 요원이었다. 그는 31년 동안 CIA에서 일했고, 그 이후에 조지 부시의 국가안보 고문(1982-89년)으로, 그리고 그 이후에는 주한 미국대사(1989-1993년)로 근무했다. 광주시민들의 피를 손에 묻힌 채 3년도 안되어, 이란-콘트라 스캔들, 즉 미국 정부가 이란과 살인적 니카라과 반군(“콘트라”)에 불법적으로 무기를 공급한 불법사건에 관여했다. https://en.wikipedia.org/wiki/Donald_Gregg

1980년 콘트라 반군이 미국인 카톨릭 수녀 3명과 평신도 활동가 1명을 살해하자, 미국 의회는 구체적으로 콘트라반군에 대한 살상무기 지원을 금지했다. 1983년 도널드 그레그가 백악관 에 메세지를 보냄으로써 콘트라 반군에 대한 미국정부의 불법, 비밀 군사지원 작전이 시작됐다. 그 당시 이 작전을 위해 그레그는 펠릭스 로드리게스와 자주 만났다. 로드리게스는 체 게바라 살해에 직접 가담한 전직 CIA 요원이다. 체 게바라가 살아있던 마지막 사진에 그를 체포한 로드리게스가 함께 있다. 체 게바라는 부상당한 포로로써 결국 살해당했다.

1967년 체 게바라의 암살 직전 게바라와 함께 있는 펠릭스 로드리게스.

그레그는 베트남 전쟁 때 로드리게스의 상관으로서, 그들은 악명높은 불사조 작전(26,000명 이상의 베트남 민간인 살해 사건)에 작전을 지휘했다. 1983년 그레그는 로드리게스를 당시 부통령인 조지 부시에게 소개했다.

설갑수는 그레그가 한국에 대해 올바른 역사적 관점을 가지고, 북한과 미국의 정책을 이해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는 그레그가 한국의 정책을 안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그레그는 5.18 당시 미국의 책임에 대해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레그는 전두환에게 광주에서 “질서를 회복하라”고 명령을 내린 1980년 5월 22일 백악관 회의에서 자신의 역할을 단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레그는 미국이 5.18에 대한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http://www.kjmbc.co.kr/board/index.cfm?bbs_name=todaynews&w=view&wr_id=218248

설갑수는 그레그의 역할을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거짓이다. 그레그가 자신의 역할을 알고 있다! 그레그의 손에는 추천명의 베트남인, 한국인, 니카라과인의 피가 묻어 있다. 그레그는 단지 5.18민중봉기에만 연관된 사람이 아니다. 나는 광주에 대한 애정이 매우 깊다. 광주가 민주주의와 평화가 아닌, 광주시민을 학살한 동조자와 협력했다는 대외적 평판을 받는 것을 매우 우려한다. 설갑수가 날 공격하는 이유는 내가 광주5.18재단과 도날드 그래그 관련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기 때문이다.

그레그에 대한 설갑수의 동조

5.18민주화운동 37주년 국제학술세미나가 '광주일지: 민주주의와 자유의 집단 기억” (Gwangju Diary: A Collective Memory of Democracy and Freedom)'라는 주제로 지난 5월26일 유엔본부(Conference Room 11)에서 5.19기념재단 주최로 열리고 있다. 도도널드 그레그(Donald P. Gregg) 전 주한 미대사(왼쪽에서 두 번째)와 대표적 진보적 한국학 학자 브루스 커밍스 (Bruce Cumings) 교수(맨 왼쪽)가 발제자로서 참여하고 있다. ⓒ5.18기념재단 누리집 갈무리

설갑수는 도널드 그레그가 뉴욕 회의에서 불편함을 느껴 자기가 민망했다고 표현하면서, 광주시민에 대한 연민은 단 한마디도 표현하지 않았다. 광주시민의 씻을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레그가 잠시 불편한 것이 그리도 민망한가? 비록 그레그가 89세라로 해도, 그는 여전히 냉혹한 CIA 충성파이며, 불사조작전, 광주의 유혈사태, 콘트라반군의 살인만행, 그가 참가한 모든 미국의 작전에 대해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가?

광주시민들의 동의도 없이, 설갑수가 그레그를 5.18 UN 학술대회에 연결시킴으로써 5.18의 명예를 영구적으로 훼손시켰다. 그레그를 5.18의 “친구이자 파트너”로 만든 설갑수와 같은 사람들이 5.18재단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일이 다시는 없기를 바랄 뿐이다.

설갑수는 마지막 부분에서 필요시 정부에게 나를 밀고하겠다고 밝혔다. 도널드 그레그에 대한 연민과 48년 동안이나 전쟁 반대 활동가이자 5.18을 사랑하고 전쟁에 비판적인 학자인 나에 대한 이러한 행동은 설갑수씨가 누구를 적과 동지로 생각하는지 분명히 보여준다.

설갑수가 시도한 최악의 거짓은 나를 안다고 주장하는 점이다. 그는 나에 대해서 전혀 모르면서 마치 잘 아는 척 한다. 나는 그를 만난 기억이 없다. 설갑수는 도널드 그레그가 누구인지 연구해야 한다. 어떠한 자격이나 적절한 연구도 없이 설갑수는 광주시민의 동의도 없으면서 마치 5.18운동을 지도하는 지휘관처럼 행동한다. 

그는 게임처럼 “좌익”과 “우익”을 조정하고 도널드 그레그를 UN으로 끌어들였다. 광주인에서 설갑수는 자신의 상상속에 나와 김양래 둘 중 누가 도청에 남을 것인가? 라고 물었다. 나는 분명히 남을 것이다. 하지만 설갑수는 확실히 그 곳에 없다. 1980년부터 37년이 지난 후, 설갑수 같은 사람들은 5.18의 피에서 이득을 챙기려고 하고 도널드 그레그 같은 자들이 살해한 수천명의 피해자들의 피웅덩이에서 기억을 도려내려고 애쓰는 것이 참담하다.

설갑수의 억지주장에 얼마든지 논박할 수 있다. 내가 학술적 연구를 위해 CIA 문서를 인용하는 것은 5.18기념재단이 CIA를 이용해 자신을 정당화하는 것과 전혀 다르다. 설갑수는 내가 박정희 암살자료를 CIA에게 요청함을 비난했다. 이는 부산의 매우 존경받는 활동가들이 나에게 공개적으로 요청을 해서 내가 그렇게 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설갑수는 31년 동안 CIA요원이었고, 수천명의 피를 손에 묻힌 도널드 그래그와 5.18재단을 연결시키며, 이를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나를 공격했다.

나는 5.18을 사랑하는 어떤 사람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기를 원하지만, 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발언해야 한다. 존경하는 5.18 단체와 광주시민 여러분, 나의 답변을 읽고 광주정신의 미래를 위해 올바른 판단을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조지 카치아피카스

2017년 7월 30일
 

PM 출판사 입장- 죠지 카치아피카스의 팀 셔록 자료 인용 건에 대하여

2017. 6.21일 팀 셔록은 죠지 카치아피카스의 인용 및 표절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출판사는 팀 셔록의 주장을 확인한 바, 해당되는 근거가 발견되지 않았다. 팀셔록은 1996년 FOIA에 근무하면서 받은 미국 정부자료를 근거로 제시했다.

이 자료는 2017년에 광주에 공개되었다. 1997년 광주시는 미국 정부의 FOIA문서를 요쳥해서 공개했고, 죠지 카치아피카스는 그 자료를 근거로 연구를 했다. 또한 팀 셔록은 죠지 카치아피카스에게 미국 정보자료를 사용해도 좋다는 이메일을 보낸 것이 확인되었다. 그 메일에는 자신의 이름은 밝히지 않아도 좋다고 적혀있다. 따라서 PM출판사는 팀 셔록이 죠지 카치아 피카스에게 사과 하고, 더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해 주기를 바라는 입장이다.

Ramsey Kanaan

발행인

PM 출판사

오클랜드, 켈리포니아.

7.14.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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